료타는 태풍을 기다리고 있지.

왜냐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한때 지붕을 송두리째 앗아가곤 했던 태풍은

무슨 일이든 기어코 벌여놓고야 말 것이니까.


강력한 태풍이 예보되던 날, 료타가 일을 꾸미는 것도 그것 때문이겠지.


그러나 이미 지나가버린 관계를 되돌릴 수 있을까.

나 역시 그것이 궁금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어.


하지만 이 영화는 단호했지.

그럴 수 없다고, 아무것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어.


그래서 더 아름다웠는지도 모르겠다.

태풍의 한 가운데서, 위태로운 (전)부부가 위태로운 방식으로 태풍을 피해

서로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은.

그 위태로움 가운데서, 완전히 끝났다고 최종적으로 선언하는 쿄코에게,

료타가 할 수 있는 말은 단지 '알았다', 아니 '알고 있었다'뿐이었겠지.

료타도 사실 알고 있었던 거야.

위태로운 건 둘의 사이였을 뿐, 

태풍은 처음부터 전혀 위태롭지 않았다는 걸.

놀이터의 미끄럼틀은 너무나 평화롭다는 걸.


맞아. 태풍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겠지. 태풍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겠지.

왜냐하면 모든 것은 이미 끝나 있으니까.

빌라에 살면서 더이상 태풍 때문에 지붕이 날아갈 걱정 따위는 안해도 되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태풍이 지나간뒤', 료타는 쿄코와 싱고를 보며

그렇게 기분좋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쉽게 태풍 따위는 잊어버렸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의 만남을 기약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사실 난 궁금했어.

나도 다 아는데. 아니 알고 있었는데.

나는 왜 료타처럼 웃지 못할까.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것만 같은 이 영화는 왜 나에게 위안을 주지 못할까.



그래서 생각했어. 

여전히 나는 미련하구나.

그래서 슬펐는데, 또 어느샌가 복권이 떠올랐어. 보잘 것 없었던,

격렬한 태풍 한가운데서 흔들리던 복권,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주섬주섬 주워 모을 수 있었던 복권. 


그러니까 사실 료타가 웃을 수 있었던 것은

끝남을 받아들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보잘 것 없는 미래의 몫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모든 것이 끝나 버린 이 영화에서,

여전히 복권과 싱고는, 미래의 몫으로 남겨져 있어.

복권은 당첨되지 않을 것이 뻔하지만, 그럼에도 그 탈락은 미래의 몫이니까.

홈런보다는 포볼이 좋은,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어린 싱고 역시

여전히 미래에 속해 있으니까.


어쩌면 이 영화는

모든 끝난 것을 받아들이는 그 자리에서,

사실은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버지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듯이, 그 시작은 이전의 끝을 반복하는 것일 수는 없겠지만,

공무원이 되고 싶은 료타와 아들 싱고가 서로 다르지만 닮아 있듯이,

유통기한이 지난 소설가의 소설책과 벼루가 서로 묘하게 닮아 있듯이,


그것이 오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복권이 당첨되지 않는다고,

싱고는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없다고

그 아무것도 사실은 지금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태풍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라.

모든 상황을 바꿔줄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믿었는지도 몰라.


그런데 이제 알겠다.

이미 오래전에 태풍은 지나갔다는 것을.

이제 나도 미련 없는 미소를 지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복권은 탈락되지 않았지.

대기만성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지만 료타는 계속 소설을 쓸 테고,

싱고는 야구를 계속 하겠지.


그러니까 료타는 미소를 지었을 수도 있어.


태풍이 지나간뒤,

태풍이 지나갔음에도.



내가 너무 보고 싶은 대로만 영화를 본건가. 

그럼 이건 어떨지. 


멋진 글을 보고, 니가 '니 글도 좋아'라고 말했을 때 매우 부끄러웠어.

나는 한번도 그런 멋진 글을 써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도, 아무리 태풍이 지나가도, 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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