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김선우(이병헌)가 희수(신민아)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그리하여 잔혹하고 냉철했던 선우가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라고 보면 간단하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임이 분명하다. 냉혹한 조직, 사랑의 비극.

 

이 영화의 에피그람, 그러니까

 

 

제자 :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입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것입니까?

스승 :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고 니 마음뿐이다

 

와 같은 것들, 혹은

 

백사장(황정민) 니가 이렇게 된 이유를 모르겠지? 자꾸 딴 데서 찾는거지? 그럼 날 찾아오면 안되지 이 사람아. 임마,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와 같은 대사들. 결국 유명한 대화에서 보여주는 것.

 

강사장 : 너, 정말 이럴 거냐?

김선우 : 저한테 왜 그랬어요?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감사장 :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김선우 : 아니 그런 이유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 봐요. 저 진짜 생각 많이 해봤는데, 정말 모르겠거든요? 말해봐요. 우린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된거죠? 말해봐요. 저 진짜로 죽이려고 그랬습니까? 나 진짜로 죽이려고 그랬어요? 칠년동안 당신 밑에서 개처럼 일해온 날? 말 좀 해봐요. 무슨 말이든지 좀 해 봐!


 

강사장 : 도대체 무엇 때문에 흔들린거냐? 그 애 때문이냐?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선우)

 

이 영화는 돌려서 말하지 않는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고, 그리하여 흔들린 것은 선우의 마음일 뿐. 냉혹한 조직은 선우의 사소한 실수를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각주:1]

 

 

그러나 이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선우의 마음이 흔들렸던 단 한 순간, 그 미묘한 순간에 있다.

 

강사장 : 너 애인 있어?

김선우 : 없습니다.

강사장 : 사랑해 본 적 있어? 없어. 넌 없어. 그래서 너한테 이런 일을 맡기는 거야. 그래서 너를 좋아하는 거야 임마.

 

사랑해 본 적도 없는 냉철한 선우가 희수의 연주를 듣던 그 순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던 그 순간. 희수의 미소를 보며 함께 미소짓는 단 한 순간. 영화 내내 선우가 웃는 단 한 번.

비록 강사장은 좋아하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겠지만, 어쩔 수 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던 선우의 그 표정이, 이 영화를 살려내는 것.

 

 

  1. 강사장 : 몇 년 전 꽤 똑똑한 친구 하나가 제 밑에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 친구에게 심부름을 하나 시켰는데, 사소하게 생각했었는지 실수를 저질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대단한 실수도 아니었습니다. 가볍게 야단치고 끝날 일이었죠. 근데 그 친구 분위기가 이상한 거에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죠. 아닐 수도 있어요. 제 착오일 수도 있는거죠. 근데, 조직이라는 게 뭡니까? 가족이라는 게 뭡니까? 오야가 누군가에게 실수했다고 하면 실수한 일은 없어도 실수한 사람은 나와야 되는 거죠. 간단하게 끝날 일인데, 그 친구 손목 하나가 날아갔어요. 잘 나가던 한 친구의 인생이 하루 아침에 끝장이 났습니다. 이번 일은 손목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문학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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