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君の名は, 2017)
카테고리 없음 2017. 1. 7. 01:31 |<너의 이름은>의 영문 제목은 'your name is'가 아니다. 그냥 <your name>이다. 우리 말이나 일본어로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영문 제목에 이르러 결국 존재 동사가 빠져있다는 것, 빠졌어야 한다는 것, 그것에 이 애니메이션의 핵심이 있다.
그러니까 너의 이름은 없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彼は誰時'(새벽녘)와 '誰そ彼時'(황혼)의 정확한 뉘앙스는 알 수 없지만, 이름은 없(거나 알 수 없)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적인 '감정'에 해당할 것이다.
이 시간대에 이르러서야 시공간을 초월하여 비로소 만날 수 있게 되는 타키와 미츠하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그리고 이 만남은 이후 도쿄에서, 즉 환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저기 누가 있는지', '누가 저기 있는지' 알 수 없는, 즉 매 시간이 황혼인 도쿄에서 다시 한번 반복된다)
정리하자면, 이름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확실히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왜 그렇게 말해야 하는가?
이것을 빗금쳐진 주체 혹은 미끄러지는 기의 등등의 추상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구체적인 문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우리가 도쿄에서, 아니 서울에서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삭막함에도 불구하고, 이 미칠듯한 익명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에서 명명할 수는 없지만, 혹은 명명할 수 없는 무언가(누군가)가 있다고 믿지 않으면 우리는 견딜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쿄의 풍경에서 끝까지 어떤 낭만성을 발견하고 있는 이 영화는, 그런 우리의 허망한 믿음을 지켜준다.
나는 찾는다. 결코 이름을 알 수 없는,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