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카테고리 없음 2018. 7. 20. 13:42 |

'이름 없음'에 대하여 다시 적어 둔다. 


꿈 속에서 서로의 몸이 뒤바뀐채 만났던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서로 속해 있는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꿈이란 것이 원래 그렇듯, 서로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이 기적적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그 시간에

타키는 서로의 존재(이름)를 잊지 않기 위해 각자의 손에 이름을 적어 두자고 한다. 


그러나 정작 타키가 미츠하의 손에 적은 것은 이름이 아니라,

'스키다'였을 뿐. 


이런 수줍은 고백은, 단순히 낭만적인 이들의 감정을 인상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 

   언제부턴가 그런 기분에 휩싸여 지낸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계속 누군가를 찾고 있었어."



우리는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러나 그 목적어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타키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좋아한다'는 고백만을 미츠하의 손에 남긴 이유다. 


목적어가 존재하지 않는 감정.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배웠던 사랑의 본질이 아닌가.)


그 결핍을, 

영화는 판타지를 통해서 

충족시키지만, 


그래서 영화의 판타지가, 식상하지 않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를 위로해 주기 때문이다. 


이 시간도 결국 흘러갈 것이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

Posted by 문학콘서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