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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하는 데 말은 더 이상 필요없다.

문학콘서트 2013. 3. 21. 15:29

거래하는 데 말은 더 이상 필요없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여기서 말하는 시장은 생산과 물질적 재화의 유통이라는 배타적 의미로 사용된 시장이 아니라, 생활의 물질적이며 상징적인 욕구들의 조직을 의미한다를 구별해 보자. 시장경제에서는 말이 거래에 필수적이지만 자본주의는 순순한 합리성만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자본주의 내에서 행위자들은 애매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기호들을 통해서 지금 관건이 되고 있는 것, 즉 거래 대상인 물품 혹은 서비스의 가격과 그것의 품질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이제 거래에는 말이 필요하지 않다. 단순한 절차의 적용만이 남는다. 그런 까닭에 경제학은 그처럼 집요하게 수학적 처리에 집착했고, 그럼으로써 일련의 말과 몸짓을 주고받은 뒤, 양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 혹은 결렬에 이르게 되는 거래 과정의 불확실성, 즉 말이 개입할 때 생겨나는 불확실성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말이 아닐까? 물론, 우리는 어쩌면 이처럼 지나치게 간결한 대답에 만족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이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구성 요소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인류학자 앙드레 르루아-구랑(Andre Leroi-Gourhan)언어는 도구만큼이나 인간의 특징을 이룬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가장 발달된, 가장 실험적인 형태의 자본주의는 교환 과정에서 말을 배제한다. ... 슈퍼마켓 무인 계산대가 늘어나면서 차츰차츰 계산원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태아의 단계에서든 혹은 생식세포 단계에서든, 아직 말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아기들을 거래하는 일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을 상대로 광고 메시지를 주입한다. 자본주의의 이상이 무엇인지 이제 여실히 드러난다. 수단이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될 세계로서, 이 세계로부터 부정확함, 불분명함, 망설임, , 유희 등의 요소들은 제거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바로 인간들이 양식, 욕망, , 혹은 정신을 거래할 때 작용하는 요소들이 아니겠는가. 만약 언어가 인간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인간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자본주의는 언어를 제거함으로써 인간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자본주의자는 세계의 급격한 변화가 야기하고 확산시킨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결국 기술에만 의존하며, 그런만큼 환경위기의 해결책으로 기술을 강조하게 된다. 철저하게 일관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기계에게 조절 임무를 맡김으로써 언어 없이도 지낼 수 있는, 그러니까 언어 없이 지낼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에르베 켐프, [지구를 구하려면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라!], 서해문집)